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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최신작 오직 두사람을 거의 육개월만에 읽는다.
김영하의 작품을 거의 빠짐없이 읽었다.그리고 그가 나오는 프로그램을 거의 다 챙겨보았다. 그가 진행하는 팟캐스트를 거의 다 들어보았다. 이 정도면 나도 김영하의 꽤 딥한 팬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작가로서 그가 하는 이야기에 관심이 있다. 하지만 그보다도 사람 김영하가 하는 이야기에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그는 보는 눈이 달라야 작가 혹은 시인이 될 수가 있다고 했다. 그는 좋은 눈을 가졌다. 일상을 바라보는, 사회적 세태에 접근하는 그의 통찰력을 신뢰한다. 그래서인지 그가 쓴 소설도 좋지만 낭독회에서 그가 쓴 소설에 대해 이야기를 듣는 것을 더 재밌어 하는 편인 것 같다. 같은 맥락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은 김영하가 여태껏 강연, 인터뷰에서 했던 이야기를 모은 '말하다'라는 책이다. (이 책은 얼마전에 생일을 맞은 친구에게도 선물을 했다.)
혹평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여태껏 읽은 그의 소설에 대해 한문장으로 촌평해 보면 '재밌게 읽히지만 남는 것이 없다.'라고 할 수 있겠다.
세련되고, 문체가 간결하며 책이 리듬감이 있고 스토리는 참신하다. 하지만 장편소설에 이르러서는 뒷심이 부족하고 인간 저변에 자리잡고 있는 깊은 정서를 건드리지 못하는. 살인자의 기억법이 특히 그랬던 것 같다. 소설이 알맹이가 없는 느낌. 무엇으로 밀도있게 채워야했었냐고 묻는다면 그건 잘 모르겠다.
소설을 읽고 나서 작게는 며칠 동안 독자의 머릿 속에 맴돈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 책은 읽은 이로 하여금 이야기에 대해 곱씹게 한다. 크게는 인생에 대한 관점,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어 내기도 한다.
그의 소설은 재밌다. 재밌는데 재밌는게 다일 때가 많았다. 읽을 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다가 다 읽고 나면 그저 다 읽었다는 사실만으로 그만이 되어버리는. 식당으로 치면 꽤 입소문도 나고 맛도 있다고들 하는데 막상 먹어보면 무난하고 맛있긴 하지만 이렇다할 인상을 주지 못하는 8점짜리 맛집 정도라고나 할까. 식당문을 나서는 순간 잊어버리는...
소설이라는 장르를 입문하기에는 무난한 작가. 대중적으로 꽤 잘 팔리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작가. 근데 딱 그정도.(단순히 소설가로서의 김영하에 대해 느끼는 바이다.)
소설이라는 것에는 주제의식이 없다고 한다. 독자에게 무엇을 말하기 위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주제라는 것을 의식하고 쓴다면 그 소설은 아주 촌스러워진다고 한다. 단지 소설이라는 것은 흥미로운 정신적인 미로를 설계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독자들이 뛰어놀 수 있게 하는 일종의 정신적 테마파크라는 것이다. 그의 표현이다. 정신적 테마파크를 설계한다는 그의 표현을 생각해보면 그동안의 소설들이 왜 나에게는 그런식으로 느껴졌는지와도 어느정도 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소설은 대체적으로 내밀한 정서의 변화를 이끌어 내지 못한다. 오피니언 리더로서의 김영하는 너무나 매력적인데 본업을 하는 김영하는 오히려 임프레션이 약했다...
결국 이 얘기를 하기 위해서 이 글을 시작한 것인데,
심경의 변화가 있었을까, 이 소설은 다르게 읽혔다. 여태껏 써왔던 글과 포맷이나 소재의 참신함은 여전하다. 여전한데, 무언가 달라진 느낌.
개인적으로 여태껏 읽은 김영하의 책 중에 가장 좋았다. 그리고 표제작인 '오직 두사람'외에도 버릴 작품이 없는 것 같다. 하나하나 수작이라고 느꼈다.
'무슨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의 김영하와 '오직 두사람'의 김영하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었다. 어떤 계기가 그로 하여금 변하게 했다고 느꼈다.(책의 마지막에 이르러 작가의 말을 통해 그 계기가 '세월호 사건'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책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말을 덧붙이고 싶은데, 아직은 내가 왜 좋았는지, 어떻게 좋았는지에 대해 소상히 표현할 길이 없어서 마지막에 나온 작가의 말을 덧붙여 본다.
이 소설을 기점으로 지난 칠 년간의 내 삶도 둘로 나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 세편에선 옥수수와 나의 찌질하고 철없는 작가, 생물학적 아버지의 유골을 받으러 뉴욕으로 떠나 양복만 걸치고 돌아오는 슈트의 편집자, 싱글맘이 되겠다는 직원 때문에 골머리를 썩는 출판사 사장이 나온다. 그에 비해 이후의 네편은 훨씬 어둡다. 희극처럼 시작했으나 점점 무거워지면서 비극으로 마무리되는 영화를 보는 기분이다. 아이를 유괴당했거나, 첫사랑을 잃었거나, 탈출의 희망을 버렸거나, 아버지의 죽음을 지켜보는 딸의 이야기를, 나도 모르게 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다시 읽어보니 앞의 세편도 뭔가를 상실한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작가는 창작의 희열을 잊어버렸고, 편집자는 오랫동안 찾던 아버지의 존재 대신 양복만 얻어 돌아오고, 사장은 오랜 친구의 죽음을 겪는다. 다만 이들의 그 상실을 인정하지 않을 뿐이다. 옥수수가 아니라 믿으면 됐고, 아버지의 양복이 있으니 됐고, 위선과 작별했으니 된 것이다. 그들은 모두 자기 자신을 위안하기 위한 연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를 찾습니다 이후는 조금 다르다. 그들은 자위와 연기는 포기한 채 필사적으로 '그 이후'를 살아가고 있다. 2015년에 쓴 이 문장은 그 이후에 쓰게 될 소설들을 암시하고 있는 것만 같다.
"이제 우리도 알게 되었습니다. 완벽한 회복이 불가능한 일이 인생에는 엄존한다는 것, 그런 일을 겪은 이들에게는 남은 옵션이 없다는 것, 오직 '그 이후'를 견뎌내는 일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깊은 상실감 속에서도 애써 밝은 표정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세상에 많을 것이다. 팩트 따윈 모르겠다. 그냥 그들을 느낀다. 그들이 내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다. -2017년 5월 김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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